2024/11 8

기록적인 눈이다

이틀 동안 내리는 눈에 기겁했다.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온 나는 참 이런 겨울이 적응이 안된다. 왜 제설을 안해주는거지... 염화칼슘을 뿌려주지도 않고, 도보는 눈을 치워주지도 않는다. 산골마을 사는 거 처럼 눈 속을 헤매며 걸어야 했다. 미끄덩미끄덩 뒤뚱뒤뚱 걸어야 하는 게 참 힘들었다.첫째날만 해도 괜찮았다.타다가 손 엄청 다쳤던 나의 애용하는 킥보드도 소복히 눈이 쌓였다. 늦었을 땐 킥보드가 짱이야.저녁부터는 안전화 신고 다녔다. 잘한 선택...다음날도 안전화🫡⛸️칭구가 보내준 사진ㅋㅋㅋㅋ 30cm 실화냐

현장의 어떤 하루

아침을 먹었다. 샐러드와 토스트랑 커피. 삼시세끼 챙겨주는 회사밥 먹을 때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타지생활하며 자취하는 지방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요즘 계속 플로터 고장나서 자주 고쳤다. 요새는 알폼, 갱폼 셋팅한다고 도면 컨펌하느라 자주 애용되었던 플로터. 그 덕에 고장이 나버렸다.A0사이즈 롤용지 시키고, 프린트헤드랑 매트블랙 컬러도 구매했다. 조용히 혼자 어루고 달래듯 재부팅 10번 쯤 시키면 돌아갔다. 롤용지 교체하고 문제가 사라졌다. 서비스센터에 전화도 하고, 견적서 뽑아 자재청구도 하고, 고민해서 혼자 고치고 출력되는 거 보면 뿌듯하다...퇴근하고 집 가는 길에 산타풍선이 있길래. 너무 귀여워서 찍었다. 사먹진 않고 사진만 찍고 지나간 게 좀 웃기다.퇴근하고 기운 빠진..

자신을 믿는 것

오늘은 결혼식에 갔다가 오랜만에 교육원 친구들이랑 모였다. 참 언제든 만나도 편하고 의지가 된다. 6개월 동안 힘들게 같이 공부했던 기억 때문인지, 나에게는 회사 인턴 동기 같은 느낌이다. 학원 다닐 때는 그 때도 심적으로 취업을 앞두고 부담되고 힘든 마음에 따로 시간내서 못놀다가, 교육원을 졸업하고 현장에서 고생하며 연락하며 더 친해진 거 같다. 그 때 그냥 한 반에서 수업들으며 같이 학식 먹던 순간들이 행복이였음을 알게 된 건 현장가서 개고생한 뒤였던 거 같다. 애들도 다들 그렇게 말한다. 거의 직장생활 하듯, 주 5일 꼬박 하루를 쉬지 않고 한 반에서 수업듣다보니 자연스레 쌓여진 우정.다들 현장 나가서 이 현장, 저 현장, 저 회사, 이 회사 얘기들을 들어보며 업계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감사할 ..

원했던 일인가

혼자 남겨진 나단열재 구획 그리는 것만으로도 여러가지 도면 보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궁금한 부분 물어보는 것도 참 바쁘신 팀장님들 사이에 눈치가 보이고, 또 이것도 모르냐는 말에 약간 위축되기도 했다. LH설계지침에 따라 표준상세도나 시방서 토대로 진행되는데 여러 자료를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만으로도 설계의 첫 시작이였다. 아직은 단면 끊고, 하나 도면만 보고서 펼쳐서 생각해보고 그런 식으로 자유자재로 도면 보는 눈은 없다. 근데 이런 식으로 눈동냥으로 배워서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원했던 일은 찾아왔는데 여기가 맞나요배움은 재밌고, 밖으로 에너지 쏟고 큰 소리치고 사람과 시간에 쫓기던 시공에 비해서는 이 정적인 업무가 마음이 더 편하다. 하지만 왜 나는 사수 없는 곳에 ..

도대체 뭐가 옳은 선택인건가

남친이는 2주 동안 해외출장 가고, 덩그러니 서울에 혼자 남겨진 나...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주어진 숙제들을 꿋꿋이 쓰러질 듯한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해내고 있었다. 하나씩 풀어나가야 하는데 그 하나가 쉽지 않다.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고 혼자 해결해야 된다. 이직을 또 해야하나 나가더라도 억울하다. 어떻게 할까. 이직을 해야 하나. 이사를 해야 하나. 뭐 하나 선택이 쉽지 않았다. 회사 집주인은 편하게 있다가 결국엔 나가달라는데, 남겨진 게 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당장 나가자니 나에게 경제적 손실이 너무 예상된다. 맘 편한 게 최고라는 분들이 대다수고, 일부 회사 분들은 별일 아니니 버틸 수 있으면 버텨라는 분도 있고. 전에 회사에서 관둘 때는 진짜 죽을 거 같이 힘들어서 관뒀는데 현장에 계신 많은..

길이 전혀 없을 거 같다가도 나타난다

사람들이 삼재냐고 물어볼 정도로 버티기 힘든 상황들. 연이어서 괴롭히는 일들에 정신을 못차리다가도 그래도 살아내야지 하면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아둥바둥 살 길 찾아 헤매면 포기할 때쯤 길이 나타났다. 1군에서 1군으로 연봉 낮춰서 쉽게 갔고, 숙소비 아끼는 거 보다도 사람이 중요했는데 무엇이 중요한 지 모르고 선택하다 피봤다. 겨우 4개월 만에 주변을 애타게 찾아헤맸다. 생각보다 빠르게 현장을 떠나야 하나. 찾다보니 세번의 면접기회가 왔다. 근데 이제는 두렵다. 또 잘못된 선택을 해서 일이 힘들어지면 어쩌지. 심하게 데이고 나니 별의 별 생각이 다든다. 준공 때까지 정말 잘 다니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퇴사를 결정한 오늘도 동료 분들께 말하다 두번을 울었다. 나도 눈물 쏟으며 느낀 건. 참 여기서 일..

고민 끝에 내린 결정

엄청나게 지루하고 피곤한 고민 끝에 결정이 내려졌다. 인생 선배로서 이를 본보기 삼아 더 성장해라는 말을 듣고 영혼없이 귓등으로 듣다가... 서서히 받아들였다. 평생 계약직할거냐, 새로운 경력을 쌓아보겠냐. 어쨌든 그만두고도 내가 원하는 건축 관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지금 그만 두나, 또 계약직으로 1년하고 그만 두나 똑같지 않냐는 친구의 말에. 나름 빠르게 결정했다. 어찌 됐둥 먹고는 살아질거고, 포기하지 않을 마음가짐이 주어졌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가면 한 곳에서 버텨봐야지. 꺼져버린 열정이 아주 조금 살아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또다시 시작할 기운을 내는 일은 참 어려웠다. 다양한 일을 경험해봤기에 더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랬기에 나의 성장 과정을 생각했고, 가고 싶은 방향이 맞..

계속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계약직

계약직이라고 해도, 내가 정한 길대로 정하고 실천하다보면 탄탄한 커리어가 쌓아질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 일이라는 게 그렇게 계획한 뜻대로만 되는 일은 아닌 거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였고, 지금 있는 현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었다. 저번 현장에는 계약직이라고 1년 계약만료로 내쫓기는 경력직 분을 보며 어쩌면 남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정년퇴임을 하시는 소장님이 떠나시며 나에게 "실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라고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다. 대기업 시공사는 정말 그런 거 같다. 그게 신입일지라도 쉽지 않았다. 현장 상황에 따라서 함께 하는 분위기인 곳은 신입이라 어설퍼도 정신만 버티면 함께 갈 수 있었는데, 현장 분위기가 내치는 분위기는 밑도 끝도 없이 나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